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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는 미국 중남구 애팔래치아 산맥 지방에 사는 농민과 나무꾼들이 부르는 노래다.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 벨트 지역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힐빌리의 노래>는 미국백인 하층민의 대표적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애팔라치아산맥의 아일랜드계 힐빌리 가정환경에서 태어나, 러스트벨트에 속하는 오하이오 철광 도시에서 가난하게 자란 저자의 이야기다. 이혼하고 술과 마약에 취해 아이들을 방치하는 엄마를 대신해 외조부모의 도움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변호사가 되기까지의 여정이 등장한다.
“가난을 타고났을 때 생기는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는지에 관한 나의 실제 경험담을 들려주겠다는 것이 이 책의 근본적인 목표다.(p.17)”
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므로 이 책에는 어떤 악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합지졸에 불과한 힐빌리만 등장할 뿐이다.
백인 중하류층의 생활이 그러하듯이, 저자도 그리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저자의 엄마는 무척 어릴 때 아이를 낳았고, 생계를 이어나가느라 풍족한 생활은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아빠는 매번 바뀌기 일쑤이어서 이미 기억하는 것만 해도 수많은 아버지가 존재한다. 이렇게 불안한 가정 속에서도 저자가 올바른 길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외조부모 덕분이었다. 조금은 거친 성격을 가진 조부모님이었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컸다. 이들의 무한한 지지와 믿음 덕분에 가장 중요한 시기에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었고, 올바른 진학 방법을 찾았다.
밴스가 이 책에서 강조한 것은 ‘성공의 여정’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기억 저편의 과거를 고통스럽고 처절했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 책에 담아내고, 무관심 속에 숨겨졌던 사회문제를 당사자의 입장에서 드러냄으로써 작가로서의 유명세를 얻었다.
공식화된 계급 제도는 언젠가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 조선의 양반 제도가 그러했고, 인도의 카스트제도가 그러했으며, 미국의 노예제도 역시 같은 길을 걸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권력자에 의한 자의적인 신분제도는 다만 시간상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무너지고 만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적 사례를 통해 배워왔다. 그러나 무서운 것은 공식화되지 않은, 말하자면 비공식적인 신분제도는 무너지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알 수 없기 때문이며, 그 결과 동일한 계급의 사람들끼리 단합이나 결속을 꾀하기 곤란하며, 국가는 공식적으로 누구든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다고 선전하며 이로 인하여 자신의 신분이 낮은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채택하는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우리가 사회적 신분 상승을 찬양하지만, 거기에는 부정적인 면도 존재한다. 어떤 성질의 것이든 이동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신분 상승이라는 용어는 이론적으로 더 나은 삶을 향해 간다는 의미이지만, 어딘가로부터 떠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단 떠나고 나면 과거의 생활을 더는 뜻대로 통제할 수 없다." (p.322)
저자가 자란 러스트벨트 지역은 미국을 대표하는 뉴욕이나 보스턴 같은 동부 도시들과 달리, 애팔래치아 산맥에 가로막힌 척박하고 고립된 환경과 가난에 갇혀 미래를 포기해버린 사람들이 가정 폭력과 가족의 해체, 문화적 고립 속에서 살아가는 곳이다. 이곳은 지난 선거에서 가능성이 낮다고 여겨졌던 트럼프의 당선을 이끌어 낸 일등공신으로 평가받았다. 무식하고 난폭한 ‘힐빌리’들은 사회문제이자 복지 제도의 대상이었을 뿐, 그들의 목소리는 미국 내에서도 낯선 것이었다. 32살의 밴스는 이 책에서 경제적으로 쇠락한 러스트벨트 지역의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문화적 혼란과 사회문제를 자신의 삶의 궤적에 투영해 전달한다. 사회 양극화에 따른 소외 계층의 증가와 가정의 해체, 희망을 놓아버린 미래에 대한 체념은 우리 사회에도 만연해 있다. 계층 간 문화적, 사회적 단절은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계층 간 이동을 갈수록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양극화된 세상은 고립되고 소외된 계층을 현혹하는 정치적 포퓰리즘이 자라나는 토양이 된다. 지식인들이 복지 제도 논쟁에 집중하는 동안 문화적으로 소외된 집단들은 정책과 비전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좌절감과 분노를 배설할 통로로 정치를 소비하고 있다. 가족과 복지, 일자리와 교육, 정치와 문화, 이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 속에서 개인과 사회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고,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힐빌리의 노래>는 질문한다. 이 책이 미국의 지식인 사회를 들끓게 한 이유다.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밴스]
밴스가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것은 그의 이야기가 단지 과거의 회고에 그치지 않고, 현재와 미래의 정책과 비전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의 경험은 정치적 담론에서 소외된 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이를 통해 미국 사회의 변화와 통합을 이루려는 나름의 노력을 상징한다. 밴스는 미국 최고 명문 예일 로스쿨을 졸업한 후 실리콘밸리에서 전도유망한 사업가로 성장했다. 이후 그는 2022년 오하이오주 상원 의원으로 당선되어 정치에 입문했다. 그의 선거 운동은 러스트벨트 지역의 경제적 침체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이를 통해 그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현재는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보다 높은 위치에서 미국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정치 경력은 그가 첫 작품인 <힐빌리의 노래>를 통해 대중에게 선보였던 깊은 통찰과 사회문제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특히, 저자는 자신이 힐빌리의 가난을 딛고 성공해가는 과정에서 깨달은 점을 그 때 그 때 함께 적어 내려가고 있다. 예를 들면 저소득층에 대한 국가의 정책이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적인 정책에 머무를 때가 많다는 점. 저소득층의 문제는 정부도 기업도 그 누구도 아닌 그들 스스로 만들어 낸 문제일 경우가 많기에 그들 스스로가 아니면 풀어낼 수 없다는 점. 기회가 미국 전역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는 점. 즉, 남부지역과 러스트 벨트, 그리고 애팔래치아 지역의 아이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 성공적인 전책과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 등이다. 한편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과 관련된 생각들도 눈에 띈다. 가난한 학생들은 주립대학에 진학하는 경향이 많은데 오히려 아이비리그에 진출하면 더 적은 등록금으로 대학을 졸업할 수 있다는 점. 왜냐하면 아이비리그에서는 다양한 계층의 학생들을 선발하여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풍족한 장학금을 지불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 사립대학을 졸업하면 훌륭한 인재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 기업들에서 면접의 기회를 주는데 그들이 면접을 통해 알고 싶어 하는 것들은 주로 소속감, 자기주장, 잠재 고객과의 인맥형성 능력 같은 사회성에 관련된 것들이라는 점. 유명 사립대에서는 훌륭한 교수들과 자주 교류하며 백만 불 짜리 조언을 공짜로 들을 수 있다는 점 같은 것들이다. 밴스의 이야기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보수 진영은 전통적 가치와 자립을 강조하는 반면, 진보 진영은 사회적 안전망과 평등을 중시한다. 밴스의 경험은 이 두 관점 사이의 균형을 잡고, 서로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사회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상징한다. 그의 회고록은 가난, 교육, 가족 붕괴 등의 문제가 어떻게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밴스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것은 그의 개인적 경험과 통찰력이 현재의 미국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상황인식과 선택의 중요성]
<힐빌리의 노래>는 애팔레치아 산맥에 모여 살던 아일랜드계 백인들이 오랜 세월 유지해온 그들만의 특이한 생활 방식에 대한 글이다. 저자는 힐빌리들의 삶이 도심 할렘가에 발이 묶인 하류층 흑인들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둘 다 의리를 중시하고 가족끼리 서로를 지키며 누군가 가족 중 한 명을 모욕하거나 욕보이면 스스로의 힘으로 복수를 하고 마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청소년기에 부모가 되기도 하고 마약과 범죄에 쉽게 노출되어있다. 저자가 보기에 이들의 삶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신들의 선택이 미래의 삶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으리라는 거의 종교적 수준의 냉소가 지역 사회에 팽배하다는 것이다. 반면, 캔터키 남동부의 작은 탄광마을인 잭슨과 힐빌리들이 일을 찾아 이주한 미들타운을 오가며 성장한 저자를 성공으로 이끈 요소는 미래에 대한 낙관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있지만, 그런 노력을 해도 안되는 이들이 아주 많지만 저자 J.D.밴스는 정말 하늘이 도운 케이스일 듯 하다. 엉망인 상태의 어머니 밑에서 아버지라고 불릴 만한 사람만해도 여러명인 상황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부모의 도움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할모, 할보로 칭해지는 조부모들 덕에 침몰하지 않고 간신히 버텨간다. 힐빌리가 그렇게 좋은 뜻은 아니더라도 지역 자체의 분위기는 대가족 중심의 공동체를 근간으로 한다. 그래서 그것이 밴스에게 운으로 작용한 것인지도. 조부모의 지속적이고 강인한 도움이 그나마 그를 고등학교까지 이끈 것 같다. 그럼에도 이후의 과정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또한 그가 인생에서 극적인 변화를 맞게 된 계기는 해병대 입대였다. 그가 이전에 배운 것이라곤 인생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학습된 무기력이었다. 하지만 해병대에서는 달랐다. 원하는 걸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계획을 짜고 실행할 능력 같은 학습된 의지를 얻었다. 그가 오하이오주립대를 졸업하고 예일 로스쿨에 지원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덕분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터득하는 것과 예일대 로스쿨까지의 여정은 중류층 이상의 가정환경과 사회적 자본을 가진 이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힐빌리 출신에게는 그런 삶과 방식이 존재하는 지조차도 알 수 없다. 미국이라는 사회는 늘 ‘아메리칸 드림’으로 외부에 포장되어 있고, 한국에 사는 나같은 사람들은 기회의 땅, 성공의 가능성이 널려있는 땅에 사는 저 USA들은 정말 좋겠다라는 막연한 부러움 속에 살아간다. ‘미국 거지도 영어를 잘하더라’라는 자조섞인 영어부심도 그렇다. 그런데 정작 그 미국 땅에 살아가는 상당수의 미국인, 그것도 주류로 여겨져 왔던 백인 사회 안에는 여태껏 외부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계층이 존재한다. 물론 20세기 후반부터 미국사회에서도 그 문제가 점점 부각되면서 알려지기는 했어도 이 책에서 보여주는 것만큼인지는 몰랐다. 기회의 땅이리라 여겼지만 그 기회조차 존재하는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많은 힐빌리들. 기회와 그 기회를 잡는 방법을 모르니 자기 자신이 포기한 줄도 모르고 그냥 살아간다. 포기는 그 목표를 알기라도 한다지만 그 목표가 존재하는 지도 어떻게 잡는 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게 지금 미국의 하위 백인 노동자계급이다. 밴스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는 것? 아니다. 러스트벨트 지역이라는 개천에서 변호사가 된 것이 용으로 비유될 일인진 모르겠으나 자신의 지독한 노력에 의해 삶이 바뀌었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는 가정의 중요성, 자신의 삶 너머를 볼 수 있는 경험의 중요성, 선택의 순간마다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제도적으로 단지 저소득층이라고 금전적 지원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오히려 그들을 더 게으르게 만들고 지원금을 역이용하여 마약 또는 술, 담배를 사는 데나 쓰인다고 말한다. 노력하고 싶어도 노력하지 않고 안주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다르게 접근하라, 라고 말하고 싶었던 밴스. 자신도 명확한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긴 어렵다. 하지만 러스트벨트 지역에서 밴스 자신의 삶을 대표 삼아 이 지역 사람들에겐 더 세심하고 생활밀착형 방법을 써야한다고 말한다. 세상의 수많은 힐빌리들이 공평하게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현실주의적 관점으로 설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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